겉은 멀쩡한데, 알맹이가 없었다
문서가 길었습니다. 한 줄 한 줄 다 읽어 고칠 수는 없으니, 프롬프트를 넣고 바뀐 데만 대충 훑는 식으로 손을 봤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AI는 제게 한마디 말도 없이 내용을 지우고, 제가 원하지도 않은 쪽으로 문장을 바꿔 두었더군요.
겉은 그럴싸했습니다. 문장은 매끄럽고 흐름도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그럴듯한 말들만 공허하게 떠다닐 뿐이었습니다. 쌓아둔 내용이 사라진 것도 아까웠지만, 그걸 며칠이나 눈치채지 못했다는 게 더 허망했습니다. 그 며칠은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걸 믿고 계속 써도 되나. 한동안 손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저는 AI를 검색창쯤으로 여겼습니다. 궁금하면 묻고, 보고서가 필요하면 “써줘” 하고 던졌습니다. 처음엔 곧잘 그럴듯한 것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꽤 잘 쓰고 있다고, 내심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 자신이 흔들린 건, 사무소 시스템 문서를 정리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컨디션이 좋은 날, 어쩐지 미심쩍으면 한 번 더 검토하라 시켜봤습니다. 그러면 빠진 것이 한참 나왔습니다. 혹시나 싶어 두 번, 세 번 더 돌렸습니다. 그때마다 또 새 오류가 나왔습니다. 한 번은 아홉 번까지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결정타는 따로 있었습니다. 구글 드라이브를 연결해 파일을 만들게 했더니, 제목도 파일도 깔끔하게 생겨났습니다. “우와, 이런 것도 되네.” 한참을 신기해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을 매달린 끝에 그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보니 — 앞머리 몇 줄만 덩그러니 남고, 나머지는 텅 빈 껍데기였습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습니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 문서를 하나 건네받았는데, 양식이 어쩐지 낯익었습니다. 가만 들여다보니, 어떤 AI가 즐겨 쓰는 문서 틀 그대로였습니다. 분명 그분이 만든 문서인데, 그분의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낯선 사람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풍기는, 그 묘한 기분. 저는 이런 것을 ‘AI 클리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쁜 쓰레기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 그럴듯하지만, 누구의 것도 아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제 결과물에서도 이따금 같은 냄새가 났습니다.
건축가의 데이터는 낭만적이다
이런 일들을 겪는 동안, 올해 초 어느 밋업(meet-up) 세미나에서 들은 말 한마디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웃어넘겼습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뜨끔했습니다. 우리의 데이터가 낭만적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일까. 그 말이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느낌은 있는데, 데이터는 없습니다. 방향은 있는데, 구조가 없습니다. 물론 진작부터 잘 갖춰 두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다만 저를 포함한 많은 경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늘 마감에 쫓기는 우리 일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때 그 현장 비슷한 거 있었는데”, “예전에 냈던 보고서 어디 있을 텐데”, “그 조례 바뀐 것 같던데, 정확히는 모르겠네.” 분명 머릿속엔 있는데, 막상 꺼내려면 정리된 모습으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치수 하나엔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예민하면서도, 파일 정리나 문서 기준엔 의외로 너그러운 게 우리입니다. 마감하고 ‘한가해지면 정리해야지’ 다짐하고는, 다음 마감엔 또 늘 하던 대로 급히 끝내기 바쁩니다. 그 한가한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지요.
AI가 매번 다른 답을 내놓은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기준을 주지 않으면, AI는 그때그때 가장 그럴듯한 답을 새로 지어냅니다. 어제 잘 나온 결과가 오늘도 똑같으리란 보장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실무란 게 그렇습니다. 한 번 잘 된 일이 다음에도 똑같이 돼야, 비로소 쓸 수 있습니다. 같은 기준 위에서 같은 품질이 일관되게 나오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해도 실무에선 쓸 수가 없습니다. 결국 AI가 모자랐던 게 아니라, 제가 준 기준이 정리돼 있지 않았던 겁니다. AI더러 “알아서 내 머릿속을 읽어줘” 할 수는 없으니까요.
질문을 바꾼 순간
그래서 한동안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바랐던 건,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비족이 머리끝 가느다란 촉수를 마주 잇기만 하면, 긴 말 없이도 서로의 마음이 그대로 흐르던 그 장면. AI에게도 그런 촉수가 있어 프롬프트도 설명도 없이 제 머릿속과 곧장 닿을 수 있다면, 저는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미래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귀찮은 과정 없이 알아서 읽어주기를 바라는 건, 결국 확률에 기대는 일 — 확률게임이나 다름없겠다 싶었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내 생각을 조리 있게 풀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처음 제 물음은 “이렇게 불안정한 예쁜 쓰레기를 어떻게 실무에 쓰나”였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한번 바꿔봤습니다. “이걸 실무에 쓰려면, 나는 어디를 붙잡을 수 있어야 하나.” 같은 상황을 보는데, 방향이 통째로 달라졌습니다. AI가 완벽한지를 따지는 대신, 내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묻기 시작한 겁니다.
이걸 ‘하네스(harness) 엔지니어링’이라 부른다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말에 마구를 채우듯, AI에 통제 장치를 거는 일입니다. 솔직히 저는 개발자가 아닙니다. 그저 건축사일 뿐입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렇게 낯선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설계할 때 늘 하던 그대로였으니까요.
설계는 대지 분석부터 시작합니다. 주변 맥락을 읽고 법적 제한을 살핀 뒤, 공간 프로그램을 짜 봅니다. 그리고 기초를 다지고, 뼈대를 세우고, 공간을 나눕니다. 안팎의 설비를 검토하고, 마감을 정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요소를 단계마다 붙들고 다스리는 일이 설계입니다. AI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자연어로 무심코 던졌지만, 점점 ‘어떻게 하면 더 잘 알아들을까’를 궁리하게 됐습니다. 논리적으로 정리해 넘기고, 일을 잘게 쪼개 빈틈을 미리 막고, 단계마다 검증하면서 — 마치 보더콜리가 양 떼를 몰듯, 원하는 결론으로 한 걸음씩 몰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크리스트가 생겼습니다. 빠진 건 없는지, 제가 모르는 새 지워진 건 없는지 살피는 절차를 만들고, 그 절차를 거듭하게 했습니다. 처음엔 눈으로 하나하나 대조하다가, 나중엔 빠진 항목이 있으면 표시해 주도록 간단한 점검 규칙까지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검증을 되풀이하는 주기를 ‘루프·loop’라 부른다더군요.) 제가 겪은 사고들이 그제야 설명됐습니다. 말없이 전체를 갈아엎던 오류는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범위를 막으니 없어졌고, 아홉 번이나 거듭 검증해도 자꾸 빠뜨리던 부분은 빠진 게 없는지 짚는 절차를 두니 훨씬 나아졌습니다. 거창한 개발이 아니라, 결국 내 기준을 정해 두는 일이었습니다.
그 밋업 세미나에선, 잔잔히 소름이 돋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저는 개발자가 아닌데, 제가 더듬더듬 만들어가던 방식이 개발자들이 걷는 바로 그 길이었습니다. 분야가 달라도, 논리를 세우는 사고는 결국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는 모양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AI를 잘 쓰는 법’을 도구 사용법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문제로 보게 됐습니다.
제2의 뇌 전에, 제1의 뇌
요즘 AI를 흔히 ‘제2의 뇌’라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봅니다. 제2의 뇌를 갖기 전에, 제1의 뇌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AI 모델은 정말 빠르게 바뀝니다. 많이들 쓰는 챗지피티와 제미나이만 봐도 몇 달이 멀다 하고 더 빠른 모델로 갈아치워지고, 그사이 수많은 모델이 저마다 다른 쪽으로 내달립니다. 누구는 이미지로, 누구는 추론으로, 누구는 속도로 — 출발 신호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져 달려나가는 주자들 같습니다. 어제 익숙했던 모델이 오늘은 다른 이름을 달고 있고, 그 이름을 미처 외우기도 전에 또 새 주자가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옵니다.
솔직히 우리가 그 주자들을 일일이 따라 뛸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다들 같은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저마다 다른 데로 흩어지는 그들을 좇다 보면, 정작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설 자리는 트랙 위가 아니라, 트랙 밖입니다. 어디가 내 결승선인지 — 내 사무소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 를 정하고, 거기에 어떤 주자를 기용할지 고르는 감독의 자리입니다. 주자들이 제각기 흩어져 달려도, 내 목표와 전략은 내 것으로 남습니다.
사무소 고유의 기준과 정리해 둔 데이터는 쉽게 갈아치워지지 않습니다. 한번 만들어 두면, 어떤 모델이 나와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자산으로 남습니다. 물론 조금씩 손보고 더할 일은 있겠지만, 맞춤옷이 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 전략의 토대가 바로 제1의 뇌입니다. 토대가 단단할수록, 사방에서 쏟아지는 주자들 가운데 지금 내게 가장 맞는 하나를 골라 쓰면 그만입니다. 정작 어려운 건 주자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들을 활용할 나의 토대를 갖추는 일이었습니다.
제1의 뇌는, 단련하는 것
그런데 한 가지를 더 알게 됐습니다. AI를 잘 쓴다는 건, 결국 제1의 뇌도 함께 단련해 가는 일이더군요. 데이터를 정리해 두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정리를 읽고 따질 줄 아는 눈까지 길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를 다스리고, 틀린 데를 짚어내려면, 그만큼 그 분야를 보는 제 실력도 함께 자라야 했습니다. 그 역량이 없으면 — 겉보기엔 멀쩡한 시스템이라도 — 길게 보면 어딘가에서 흔들립니다. 구조를 어지간히 이해해도 모든 오류를 잡긴 어려운데, 아무것도 모른 채라면 당장은 그럴듯하게 굴러가도 오래 안정적으로 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AI를 다루는 깊이는, 제가 그 분야를 아는 깊이를 넘지 못하더군요.
요즘은 AI가 다 만들어주는 시대라, 겉은 그럴듯해도 정작 만든 사람조차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솔직히 저도 늘 그 경계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구조까지 파고들어 이해하려 애쓰는 겁니다 — 머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간이역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생긴 고민을 AI에게 상담하고는, 그 답을 절대적인 정답인 양 믿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챗지피티가 그랬어요, 그게 맞다고요.’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에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일을 맡기는 것을 넘어, 자기 생각의 자리까지 내어준 듯 보였습니다. 제2의 뇌만 있고 제1의 뇌가 없을 때, 우리는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럴듯한 답에 나를 통째로 맡겨버리는 겁니다.
이런 정리가 귀찮고 고된 일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에겐 좀 다릅니다. 문서 편집 표준을 만들다가 ‘텍스트 고아(orphan, 문단 끝 한 줄이 외따로 떨어져 남는 것)’라는 말을 처음 알았습니다. 헤더(header)와 푸터(footer), WCAG(웹 접근성 색 대비 기준), 로고의 최소 크기를 정해 두는 일 같은 — 책으로 공부하자면 좀처럼 손이 안 가는 사소한 규칙들을, 직접 만들어가며 하나씩 알게 됩니다. 저에겐 이게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하며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막히면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 풀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머리가 좀 아픕니다. 그런데 그 씨름하는 과정이 묘하게 즐겁습니다. AI가 다 해줘서 뇌가 시들어가는 게 아니라, 안 쓰던 근육을 쓰는 ‘뇌근력 운동’을 하는 느낌입니다. 안 쓰던 근육이 처음엔 뻐근하지만, 쓸수록 단단해지는 것처럼요.
그러니 AI를 쓰는 건축사와 쓰지 않는 건축사의 차이는, 재능의 차이가 아닙니다. 자기 기준을 정리해 두었느냐, 그리고 그 기준을 또렷이 이해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스스로 알아챌 만큼 단련되었느냐의 차이입니다. 다들 알면서도 귀찮아 미루는 그 일을, 즐기면서 했느냐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기준이 있으면 AI는 든든한 직원이 되고, 기준이 없으면 위험한 검색창이 됩니다. 그럴듯하게 틀린 답을 내놓아도, 알아채지 못하니까요.
물론 이 정리에는 시간이 듭니다. 저도 적잖이 헤맸습니다. 아무 수고 없이 다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한 줄씩 정리할 때마다 사무소가 조금씩 더 단단해지는 게 보였습니다. 그 시간은 한 번 들이면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사무소에 남습니다. 제가 아홉 번씩 다시 돌리던 그 시간도, 결국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를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본 글은 충청남도건축사회 소식지 「충·남·건·축·사」 2026 Vol.15에 게재된 기고문으로,
필자 본인의 글을 전문 그대로 옮겼습니다. 지면 편집·일러스트의 저작권은 충청남도건축사회에 있습니다.
본문 삽화는 AI 생성(Gemini)이며 아트 디렉팅과 검수는 아르키비아가 수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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